[장경창선생님]
"장곡리(장곡동), 장현리(장현동), 월곶리(월곶동) 3개리는 군자면에서 북쪽에 있어 북삼리라 불리웠는데, 북삼리 사람들은 군자봉 앞 황고개 넘어 가는 길이 힘들었어. 중학교가 거모리(거모동)에 있어서 멀어도 다녀야지 별 수 있나? 그런데 해가 떨어지면 깜깜해서 꼼짝을 못하고 뛰어다녀야 했지. 낮에도 으슥했으니까.. 귀신이 나온다는 말까지 있을 정도였으니까. 그때는 군자봉을 중심으로 마을사람들이 아주 열심히 살고 있던 때였지."
※ 택시기사님의 기억도 살짝 끼워넣는다. 안산에서 택시를 탔는데 황고개길을 넘어오면서 택시기사님이 하신 말씀이다.
"여기 황고개... 택시하면서 많이 넘어다녔죠. 그때는 차가 없었잖아요. 길도 비포장이고. 어두웠다고요, 여기가. 누가 잡아가도 모르고 누가 죽어도 모를 정도로 으슥하고 사람이 도통 없었어요. 학생들이 학교 가느라 지나가는 거 말고는. 나도 택시하면서 이 길 넘어가고 넘어오면 오싹했다니까. 그냥 기분이 좋지않았어요 무서워서 그런거지, 괜히. 밤 되봐요, 어지간해서는 여기 못 다녀"
"군자산(군자봉)을 '柏山'이라고 불렀어. 이건 내가 하는 말이 아니야. 족보(장곡리의 오래된 가문인 덕수장씨 문중)에 나와있어. 조상들이 쓴 말이야. 나무목(木)에 흰백(白)자를 쓴 것이 나무 백(柏) 자인데 이걸 잣나무 백이라고 불린거야. 잣나무가 많아서 그렇게 불렀는지 모르겠는데 나무를 신성시 하는 산이지 않았을까하는 추측을 하는거지."
"군자산 뒤쪽 편에 박동렬묘역이 있거든. 족보에 나주박씨로 표기된게 있는데, 아무개의 묘를 어디에 썼노라하는 대목에 ‘묘를 백산에 묻었다’라고 쓰여있다고. 그 묘가 박동량의 묘지. 백산이라고 불리웠다는건 족보에서 보고 안거야."
‘백산’이라는 말보다 ‘군자봉’으로 굳혀진 군자산은 전설처럼 내려오는 여러 유래가 있는데, 산이 예쁘게 생겼다고 해서 군자산. 소래산에서 보았을 때 군자봉 산세가 연꽃 모양을 하고 있어 그 모습이 군자의 모습과 같다하여 군자산. 지금은 작고하신 군자면 토박이 어르신은 포동에서 바라보았을 때 군자봉의 정상부 모양이 남자의 성기와 비슷하다 하여 군자산이라는 이름보다 ㅈㅈ산이라고 불리우는게 더 정확하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군자산은 조선 말엽에 군자봉으로 바뀌면서, 서촌(西村) [옛 군자면]을 묵묵히 지켜 온 수호산으로 봉우리가 하나라 하여 일봉산(一峰山), 산의 내령이 서쪽으로만 뻗었다 하여 서령산(西嶺山)이란 별칭이 붙었다. 그러나 지금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지명의 유래는, 조선 제6대 임금인 단종이 안산 능안(陵內)[현 안산시 단원구 목내동]에 있는 생모 현덕왕후(顯德王后)의 묘소에 참배하러 가던 중, 이 산을 보고 연꽃처럼 생긴 것이 흡사 군자의 모습과 같다 하여 군자산이라 했다는 내용이다. 군자봉은 사방 어느 곳에서 보아도 군자의 위엄한 모습을 하고 있다는데에는 이견이 없는듯하다.
오랜 세월을 간직한 마을에는 이렇듯 재미있는 이야기들이 소소하게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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