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자면 구준물 출신, 풍수지리학의 대가 지창용을 아는 사람이 몇 있을까...
그는 공학과 정치학을 공부한 풍수지리학계에서는 존경받는 인물이었다. 생활권이 타지에 있던터라 고향에서의 생활은 길지않았지만, 군자초등학교 총동문회장을 지내며 적지않은 업적을 지역에도 남겨놓았다.
중앙일보사에서 발간한 소설 ‘풍수’와 정을병씨가 쓴 ‘제3공화국’에 등장하는 모델이 지창용이라는 인물이라면 놀라울까..?
대통령 이승만과 대통령 박정희의 부름을 받아 그들이 원하는바를 도와주며'국사(國師)'라는 칭호를 받았던 풍수지리가 지창용씨. 그의 이웃으로 살았던 이는 어떤 기억을 하고 있을까? 주민 한정연씨를 만나보았다.
1968년도인가.. 아마 그 정도 됐을거예요, 새마을사업이 있었던 때가. 마을회관 짓는거라든지 군자중학교 동네 안길 진입로 포장하는거라든지... 그 전에는 동네에서 자체 자금으로 했어야했거든. 그런데 그것을 지창용씨가 다 해줬다고.
지금이야 마을회관도 땅만 시다 기부체납을 하면 시에서 건물을 지으라고 얼마간의 지원금을 주었는데 그 전에는 그런게 없었단말이지.
군자면 당시만하더라도 마을에 돈이 없다보니까 건축에 필요한 자재들을 여기저기서 후원을 받아 지었는데 열악했어요. 그것을 지창용씨가 많은 도움을 준거지. 군자동이 고향이다 보니까.
군자국민학교도 아마 그 양반이 16회 졸업인가, 몇회인가 그런걸로 알고있는데, 군자초 초대 동문회장을 여러 해 하면서 교실마다 텔레비전, 피아노를 다 놓아줬다구. 그게 아마 70년도 말이나 80년대 초였을거야. 당시로선 대단한 거지. 웬만한 학교는 그런 시설 없었을거예요. 물론 다 사비야. 그 양반이 자기 가까운 친척들한테는 도움을 안줘도 사회 환원은 많이 했어요.
지금쯤 살아있었으면 한 93세 좀 넘었을까? 언제까지 살았었는지는 잘 모르겠고, 자녀 분들은 큰마나님 소생이 아들만 둘이고, 작은마나님이 아들하나 둬서 삼형제가 있어요. 그 양반 조카분이 지대식씨라고 군자영농회사무실에 있으니 자세한 걸 물어보면 알수 있으려나?
그런데 막상 동네에서는 그리 오래 살지는 않았어요. 16세 정도에 마을을 떴을거야. 그 양반이 유명해진 것은 풍수지리가로서 명성을 얻어서인데 故(고)박정희대통령과 故(고)육영수여사의 산소자리를 봐주고 나서부터거든.
서울에서 주로 거물급 정치인들의 풍수를 봐주었는데 신망이 대단해서 제자들도 많았었다고 들었어요. 그 당시 서울의 동대문운동장 근처에 사무실을 두고 약방도 경영하고 상가도 운영하고, 인사동에도 계셨다고 들었는데, 재력가였던 것 같아요.
지금 산들공원에 놓여져있는 지석묘있지요? 그게 지창용씨 댁 골대문 있는 쪽에 있었다고. 나도 어릴 때 그게 지석묘인지 모르고 올라타며 놀았지. 어른들한테 들은 얘기로 그 지석묘 있는데까지 배가 들어와서 밧줄을 매서 배를 선착했다 하더라고. 지석묘가 일종의 선착장이 된거지.
지창용씨는 매해마다 정월 초하룻날이 되면 제일 먼저 군자봉성황당 당주집에서 치성을 드렸다고 해요. 비록 생활은 여기서 하지않았어도 마을을 위해 학교를 위해 많은 일을 한 사람으로 아는 사람만 알아요. 존경받아 마땅한 양반인데 잊혀져가는 것이 안타까웠지요.
글.사진/허정임
* [소담소담군자옛이야기 수록] 글과 사진의 저작권은 군자동행정복지센터에 있으며 동의하에 '아름다운 시흥을 만들어가는 사람들' 블로그에 포스팅함을 알립니다. 책을 받아보시고 싶으신 분은 군자동행정복지센터에서 무료로 신청하세요. [문의:031-310-44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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