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학과 과학을 가르치던 학원강사의 이력은 그를 달리 보게 하였다. 필자가 숫자에 취약해서일지도 모르겠다. 세상의 모든 숫자를 다루는 사람들은 그저 존경의 대상이다.
대야동에 위치해있는 ‘상상끼리’
정확한 주소는 경기 시흥시 복지로 71번길 23이다. 골목 언저리에 있다. 바로 앞에는 놀이터가 있다. 왁자하게 뛰어노는 아이들이 목이 마른지 상상끼리 안으로 들어온다. 물을 벌컥벌컥 마신다. 그리고 다시 놀이터로 뛰어간다. 문이 열린다. 동네 주민인 듯 하다. 안에서 놀고 있던 아이를 데리고 나간다. 시끌벅적한 소리가 들린다. 꺄르르 무엇이 그리도 좋은지 재잘거리며 처음이 아닌듯한 손놀림으로 커피를 내린다. 머신기에서 윙- 소리가 난다. 커피향에 뒤섞인 아주머니들의 수다가 즐거워보인다. 한사람 두사람 인사를 하며 들어온다. 커피와 수다를 즐기던 이들이 나가고 상상끼리 공간은 이내 가득 메워진다. 뜨개수업을 하러 온 주민들이다. 상상끼리는 동네사랑방이다.
자유로운 형식의 사랑방이 되어버린 상상끼리 공간. 상상끼리 안에서의 그들은 이렇듯 소소하지만 그들만의 색채로 마을의 서사를 그려내고 있었다.
‘상상끼리’ 내부 구조는 참으로 독특하다. 신발을 벗고 안으로 들어가니 작은 문이 있고 몇 개의 계단을 거쳐 내려가니 또 다른 공간이 나온다. 창밖은 다른 방향의 골목길이 있고 공간 안에는 커다란 고양이 두 마리가 게으름을 피우고 있다.
덩치 큰 고양이들은 어슬렁거리다 캣타워에 올라 꾸벅꾸벅 졸고 있다. 게슴츠레 뜬 눈은 “뭘 봐?” 하는 듯 했다.
고양이를 보고 있으니 상상끼리 대표 김광연씨가 수줍게 내려온다. 김광연씨가 뿜어내는 아우라는 듬직함이다. 교육, 마을, 학교.. 모든 것에서 하나를 요구하면 거뜬히 열가지를 해낼듯한 신뢰의 듬직함!
당신을 만나고 싶습니다 YOU, 4권에서 만나고 싶은 인물이었으나 “할말이 없어요”라는 겸손함은 2020년 들어서야 겨우 승인(?)을 받았다. 그에게서 듣고 싶은 이야기는 많았으나 사실 조심스러운 부분도 있다. 그 경계에서 부담없는 스토리를 써내려간다.
시흥에서 처음 일을 시작한 시기는 200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시흥에서의 처음은 봉사활동이었다. 외국인근로자 관련한 봉사활동을 하다 외국인복지센터가 오픈하면서 3년여를 더 연장하게 되었다. 당시에는 외국인들이 폭발적으로 증가하던 때였다. 오랫동안 해왔던 일을 잠시 쉬고 있던 차에 아는 분의 소개로 하게 된 봉사활동은 외국어에 능통하거나 잘 알아들어서가 아니고 ‘외국인이기에’ 하게 된 일이었다. 센터는 굉장히 바빴다.
저녁 늦게 끝나는 일이 다반사였다. 쉴 수 있는 날은 일요일 뿐이었다. 그때는 불법체류자도 많았다. 주말에 쉬지도 못한 채 일을 할 때는 체력적 한계가 여지없이 왔다. 그럴때면 젊은 사람들에게 바통을 던져주고 빠져나오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센터에서의 일의 패턴은 근로자들에게 맞춰져있었다. 근로자들의 하루 일과가 끝나야 도움을 요청하러 오기 때문이다. 센터에서는 어제 저녁에 받은 민원서류를 오늘 해결하는 극한 노동을 반복했다.
1세대에 속하는 결혼이주여성들이 한국에 정착할 수 있도록 한국어를 잘 할 수 있게 지원하고 출산이나 양육에 도움이 될 방법을 찾는 일들을 진행했다.
지금은 자리를 잡아서 야무지게 살림도 잘하고, 자녀들은 고등학교 또는 대학을 준비하고 있다. 열심히 일하고 정착에 성공하면서 주택도 마련하는 등 경제적으로 안정권에 들어서있다. 이제는 한국인이 다 되었다. 만나면 자식문제, 집문제, 돈문제등을 생활 속에서 쏟아내며 마치 한국사람처럼 논의하는 친구가 되었다.
이주여성들의 한국사회로의 정착은 꽤나 적극적이었다. 외국인 근로자로 들어온 이들에게 통역을 맡아 해 주고 문제 있을 때 경찰서까지 동행해주기도 하며 본국에 대한, 본국 사람에 대한 도움을 아끼지 않고 해주었다. 인지상정이랄까... 타지에서 만난 본국 사람들을 향한 마음이 도움의 형태로 보여주는 것이니 그 마음은 이해하고도 남음이 있다. 어려운 일이 생겼을 때 해결하기 위한 도구나 장치를 연결해주는 일은 마땅한 일이었다. 어차피 돈 벌기 위해 왔고 또 살기 위해 온 것일테니 건강하게 일하다 본국으로 돌아갔으면 좋겠고 정착해서 잘 살았으면 좋겠다.
지금은 그때에 비하면 많은 것이 달라졌다. 이제는 한국인이다, 외국인결혼이민자다, 돈 때문에 왔다등의 이유들이 많이 사라졌다. 쓰였던 용어도 많이 바뀌었다. 외국인노동자, 근로자, 결혼이주여성, 다문화.. 용어의 변천은 ‘외국인주민’ 이라는 데까지 오게 되었다. 외국인주민이라는 용어를 공통적으로 쓰게 된 그 시간까지 같이 견뎌낸 사람들이 국적을 취득하게 되고 문화가 다르다는 것을 법적으로 인정함으로서 잘 살아가고 있다. 아직도 다문화라는 이름이 더 익숙해져있지만 언젠가는 익숙해질 것이라 믿는다.
“그렇게 센터에서의 2.3년이 지나고 일을 쉬고 있었는데 어떤 분이 재미있는 교육을 해보자 해서 만든 것이 ‘상상끼리’예요.”
상상끼리의 시작은 공공성을 바탕으로 한 문화공동체다. 그 안에 질 좋은 교육, 재미있는 교육을 담아내며 마을의 가치를 만들어가는 일을 도모했다.
상상끼리는 시흥시청 후문에 있었다. 그곳에서 청소년 대상 문화교육프로그램, 체인지메이커프로그램, 여행프로그램, 공공디자인, 역사문화교육, 마을교육을 주로 다루었는데 김광연대표는 당시 교육파트를 담당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않아 상상끼리를 이끌었던 이들이 각자 자신의 길을 찾아 돌아가고 상상끼리는 대표 김광연을 내세우며 운영을 맡게 되었다. 상상끼리는 2015년 후반에 준비해서 이듬해인 2016년에 이사를 하게 되었다. 그곳이 지금의 대야동에 위치한 마을문화실험실 ‘상상끼리’다.
상상끼리에서 하던 일은 그대로 유지했다. 주 사업은 여전히 아이들 교육사업이며 마을 사람들과 공간을 지켜내고 있다.
교육사업은 소규모로 진행하고 있다. 처음부터 손발을 맞춰오던 민정례씨가 파트너다. 상상끼리의 유지를 위해 민정례씨와 나눈 고민은 ‘우리가 이러고 있을 수 없다, 교육 사업을 하려면 토대를 닦아야 한다, 평생학습과에서 진행하는 마을배움터, 학습배움터 사업이 있다, 마을사람들과 해보자’해서 하게 된 저예산의 프로그램을 우선 시작했다. 이웃들이 모여 담소를 나누고 차를 마시며 소통할 수 있는 공간, 청소년들이 안심하고 넘나들 수 있는 곳, 작게 모여 작은 뜻을 모아 마을의 가치를 크게 심어줄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상상끼리 공간이 마을에서 모두의 사랑방이 되었으면 했다. 그래서 뭐든 해야했다.
뭐든 하니 반응이 왔다. 마을 사람들은 오며가며 유리창 너머의 공간을 기웃거리기 시작했다. 호기심은 관심을 갖게 하고 관심은 문을 열게 했다. 그리고 묻는다. ‘여긴 뭐하는 곳이예요?’
봄날 아른거리는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른 마을 사람들의 관심은 점점 사람들을 모이게 했고 마을을 위한 ‘좋은 일’과 학생들을 위한 ‘교육’이 들어서게 되었다. 이제는 자연스럽게 묻는다. “뭘하면 좋을까요?” 그러면 답한다. “창의적 수업을 해줬으면 좋겠다” 마을교육을 담당하는 자와 마을주민들은 주고받는 말로 고민하다 답을 찾아낸다. 그 한 예로 드론교육이 있었다. 드론이 막 생겨나기 시작할 때여서 반응이 좋았다.
그리고 댓골마을학교가 만들어졌다. 댓골마을학교는 2017년도에 정식으로 등록되었으며 학교 밖 마을 교육공동체의 성격을 띠고 있다. 동네사람들과 함께 만들었다. 지역의 특성에 맞는 교육사업을 중심으로 현재는 대흥중학교의 돌봄교실을 운영하고 있다.
교육사업을 하니 마을교육자치에 한발 더 깊이 들여지게 되고 그로 인해 학교와 마을이 더욱 분주해졌다.
교육의 근간이라고 하는 상상끼리에서 댓골마을학교로 확장 된 것은 오로지 하나, 마을 주민 간의 화합을 중심으로 한 마을공동체를 형성하여 청소년사업을 실천하는 마을의 작은교육공동체를 위함이다.
마을에는 마을주민들의 ‘이웃정보망’으로 재능있는 자들이 어렵지않게 발굴되었다. 그들은 마을의 지역력을 높이는데 큰 힘이 되어주었다. 아이들을 위한 기초학습교육은 발굴된 마을선생님들이 맡았는데 필요 과목은 영어, 과학, 수학이다. 전문성을 확인한 마을의 자원이 돌봄교실에 포진되었다.
수업은 재미있게 진행되었다. 아이들은 전체가 아닌 ‘나’를 위해 가르치는 것에 매우 만족해했다. 그것을 보면서 소규모 그룹의 운영과 집중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학교와 마을교육의 연계가치를 알아버린 학교에서도 적극적으로 발을 맞추어주고 있다. 학교가 마을을, 마을이 학교를 필요로 하면 너나할 것 없이 하나가 된다. 그러나 올해의 사업들을 위해 수많은 시간과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면서 준비를 했지만 코로나는 넘을 수 없는 강한 벽이었다. 2021년도에는 올해 계획했던 일에 더해 더 막강한 마을교육자치를 선보일 수 있을까?
코로나는 수업방식의 형태마저 바꾸어놓았다. 온라인 비대면 수업이다. 온라인수업은 정상적인 학교 수업에 비해 두배 이상의 준비와 과중한 업무를 부여해주었다. 그럼에도 학교에서는 학습부진에 어려움을 겪는 아이들을 위해 대책을 마련해야했다.
학교와 마을이 고민했다. 학교에서는 아이들의 기초학습부진과 불규칙한 생활 습관을 걱정했다. 김광연대표는 곧바로 실행에 옮겼다. 마을에서는 학교의 도움을 받아 교육복지 대상자 중 신청자를 접수 받아 뒤처지는 학습을 보충해주었다. 방학 중 생활이 무너진다하여 규칙적인 기초 생활을 위한 돌봄도 운영했다.
사실 규칙적이고 건강한 생활을 위한 교육의 장을 마을에서 만들었지만, 학교에서는 모험일 수 밖에 없다. 그럼에도 담임교사, 교육복지사, 학부모로 구성된 트라이앵글 구조는 안정된 학교 밖 교육을 구축해내었다. 방학이 끝나고 2학기에는 대야초등학교 저학년을 대상으로 방과 후 마을 돌봄을 이어나갔다.
“학교가 아닌 마을에서 하는 교육이라서 그런가 담당선생님들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나보더라고요. 나름 재미있게 아이들하고 수업을 하고 있는데 저 건너편에서 누가 계속 여기를 기웃거리면서 지켜보는거예요. 누군가 했더니 담임선생님인거예요. 우리 반 애들이 왔나 안왔나 확인을 하고...” 아이들이 혹시 오지 않거나 상황이 어려워지면 연락할 수 있는 연락 체계를 위해 담임-학부모 순으로 연락망을 구축했다. 온 마을이 아이 하나를 키우는 모습이 연출 된 것이다. 마을의 존재 가치가 빛나는 순간이었다.
대야동은 원도심으로 뉴딜정책과 도시재생으로 골목골목이 나뉘어지는 상황에 놓여있다. 골목길에 도시재생사업에 들어가는 구역, 뉴딜구역, 이도저도 아닌 구역이 존재하는데 사라지는 것에 대한 아쉬움도 있고 발전되는 것이 좋은 기대감도 있다. 마을 사람들의 갈라지는 의견이다. 마을에서 오랫동안 계승되는 좋은 모습들과 변화되는 것들을 나누며 어떤 마을의 풍경이든 다같이 잘 사는 이웃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 변화 되는 모습들을 김광연대표는 기록으로 남기고싶어 했다.
그래서 만들어진 것이 현재 진행 중에 있는 ‘마을전자지도’다. 마을의 모습은 업데이트를 자주 해야 할 정도로 변화의 주기가 빠르다. 종이로 제작하면 업데이트가 어려우니 바뀌기 전 마을의 모습과 바뀌고 난 후의 마을의 모습을 올리면 전과 후를 모두 볼 수 있어 선택한 방법이다.
또 의미있는 교육사업을 준비하고 있다고 한다. 아이들을 통해서 동네 어른들을 구술하는 작업이다. 긴 시간을 요하겠지만 마을의 기록 유산이 되지않을까...라는 생각에서 추진하고자 한는 기록사업이다. 인물중심으로 구술하는 기록물은, 인물이 살아온 환경이나 주변 상황을 풀어내어 마을의 역사까지 포괄적으로 다루어지게된다. 그 과정에서 아이들은 마을의 역사를 알게 되고 사람이야기를 통해 스스로 무언가를 찾아내는 힘을 기르게된다. 아이들이 직접 취재히고 기록하는 일... 가치롭고 의미있는 일이 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학교의 도움이 필요하다.
김광연대표가 그리는 마을의 모습은 그리 거창한 것은 아니다. 문을 열고 나가면 엄마친구, 아빠친구여서 편한 동네, 든든한 어른들이 있어 안전하다고 느껴지는 동네, 그래서 떠나고 싶지않은 동네다. 놀이터에서 놀다 물 마시고 싶으면 들어오는 공간, 엄마가 올 때까지 마음 놓고 기다리며 놀 수 있는 공간, 그래서 상상끼리는 아이들과 엄마들에게 안전한 곳이 되는. 그런 것들은 마을네트워크로 형성되어 마을의 역사를 함께 그려가게 된다.
김광연대표는 바란다.
마을에서 소외되는 이들이 없게 그리고 아이들이 마을에서 행복하고 건강한 성장을 할 수 있게 한 목소리를 내고 토대를 잘 닦아주는 어른들이 많아지면 좋겠다고.
그리고 한마디 한다.
“대야동 주민 여러분! 이 공간은 여러분을 위한 여러분의 쉼터입니다. 언제든 부담갖지말고 들어오셔서 차 한잔 하세요” 라고.
* 이 사업은 시흥아동·청소년지원네트워크 주관·주최, (사)더불어 함께가 기획하고 삼성꿈장학재단에서 후원합니다. '당신을 만나고싶습니다 YOU' 는 ‘사람’을 지역의 ‘자원’으로 발굴, 연계하여 지역력을 높이는 일을 목적으로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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