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정왕마을이야기/정왕본동-YOU

열정 하나로 쏘아 올린 공

전행주관장/정왕평생학습관

 

열정 하나로 쏘아 올린 공

평생교육과 관련된 곳이면 사서직들도 많은 역할을 한다. 도서관과 평생교육학습은 무관하지 않으며 도서관은 평생교육의 풀뿌리다.

 

‘1996, 낯선 시흥의 첫 발자국은 시흥시종합복지회관에서 찍었다. 도서관이라는 명칭이 없는 곳에서의 근무였다. 이 넓은 땅에 도서관 하나 없다니.... 직원들과 순회문고를 다녔다. 책이 그리웠던 시절, 도서 대출은 큰 인기였다. 지금의 시흥시중앙도서관은 2002년도에 개관했. 이후 정왕어린이도서관 개관 작업에 참여하고, 능곡도서관이 개관할 때는 6급으로 승진했다. 도서관이 아닌 다른 과의 발령은 외도라고 표현해야 하나... 내가 과연 잘 할 수 있을까? 그러나 이기에 남들과는 다른 이면을 볼 수 있지 않을까? 그렇다면 남들과는 다른 시각을 보는 역할을 해보자... 혼자서 생각을 바꿔 먹었다. 나에게 주는 힘이었다.’

 

능곡도서관은 주무팀장으로 발령받아 갔다. “팀장 자리에 앉아있긴 했는데 6급이 되자마자 주무팀장이 되는 경우는 거의 없거든요. 아마도 김영진관장님이 눈여겨 보신듯해요.” 그곳에서 또 하나의 일을 벌였다. 도서관에는 전문 교육을 받은 사서가 있어야 하지만, 동네 안에서 활동할 수 있는 사서를 직접 양성해보고 싶었다. 마을사서양성과정이었다. 능곡초등학교와 연계했다. 학교에서 교육하기 힘들어하는 부분을 직접 해주겠다고 하니 좋아했다. 책으로 연결되는 내 이웃, 내 이웃의 아이들을 위한 사서활동은 주민 봉사자들에게 호응이 좋았다.

 

동네 서점 대출제를 시행했다. 열악한 동네 서점을 위한 일이었다. 당시 시흥시는 지역경제활성화에 신경을 쓰고 있던 때여서 여러모로 순조로웠다. 영세한 서점들이 지역에서 자리매김을 할 수 있도록 도서 구입비가 관외로 새지 않고 서점으로 오롯이 갈 수 있게 했다. 임병택시장이 도의원일 때 지역아동센터 아이들이 책을 많이 읽었으면 좋겠다는 뜻을 비치면서 따 온 예산으로 도서 구입을 했다. 어떤 책을 어떻게 고루 읽게 할 것인가... 고민은 그리 깊지 않았다. 도서관의 부재는 책에 대한 목마름으로 나타나고 있었다.

 

문화예술과, 첫 번째 외도

사서직이 할 수 있겠어?” 라는 선입견을 깨고 싶었다. 좀 더 열심히 하는 모습을 보여서 사서직도 행정직 못지않은 열정과 노력을 가지고 하는구나하는 모습도 보여주고 싶었다.

 

문화예술과에 있을 때 시흥시 최초로 창작뮤지컬 두 편을 만들었다. ‘1721호조벌이 그 중 하나다. 시흥시립합창단과 함께 작업했다. 작업 과정은 시작부터 힘들었다. 합창단이나 문화예술과의 갈등은 작품이 무대에 올라가기 전까지 계속됐지만 1721호조벌의 성공적인 공연 이후 오히려 합창단측에서 더 적극적이었다. 두 번째 작품은 합창단 측에서 하고 싶어 했다.

 

또 하나 문화예술중토심사 통과를 기억한다. 20168월부터 20192월 사이에 1년에 3번 정도 행안부와 문체부를 쫒아다녔다. 우리의 임무는 왜 문화예술회관을 건립해야하는지의 설명이었다. 그 쪽에서는 경제적 타당성 부분에 초점을 맞춰서 답변했다. 그들은 안산시를 이용하길 바랐다. 물론 받아들일 수 없었다. 계속해서 설득하고 점수가 낮은 부분은 점수를 높게 만드는 방법을 배워 채우려 노력했다. 도전은 계속됐다. 45기로 어렵사리 통과시켰다. 문화예술과 직원들은 과의 특성상 평일에는 밤에 행사가 있고, 주말은 늘 있어서 심사 통과까지의 과중한 업무를 짊어지며 시달려야했다. 새벽을 넘기는 근무는 다반사였고 우리는 스스로 강철체력이라 칭했다. 그래도 해냈다는 자부심은 지친 몸을 다시 일으키게 하는 에너자이저였다.

 

공모사업도 한 획을 그었다. 예전에는 문화예술공모지원사업을 지금처럼 공개적으로 하지 않았다. 공모사업을 할 때면 관련 단체에서 전화가 많이 온다. 아니다 싶었다. 20171, 공모사업을 전면 개방하기로 했다. 여기서 약간의 오해가 있었는데 결코 예술인들의 활동을 방해 할 목적은 없었다. 공모사업으로 바꾼 이유는 경기도는 이미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 시 예술인들이 시흥시에서만이 아닌 경기도나 문체부등 많은 곳에서 문화예술 관련 사업을 공모를 통해 지원받아 더 큰 사업을 하면 좋지 않겠는가? 그것을 시흥시에 도입했을 뿐이다. 공모를 원하는 예술인들이 많다는 조사 결과에 따라 소속, 관계를 없애고 모두에게 동등한 기회를 주고자 했다.

 

심사위원도 외부에서 문화재단쪽 관계자들을 섭외하여 보게 했다. 혹자는 이렇게 말한다. 시흥시의 정서를 모르는데 어떻게 심사를 하냐고. 하지만 내부 심사위원을 섭외한다면 개인적 친분의 영향도 없지는 않을 터. 객관적이고 공정한 심사를 위해 선택했고 또 강행했다.

 

취지의 진심을 받아들여주던 이들은 이후 경기도공모사업을 따냈다. 다른 중앙에서의 공모사업까지 따냈다. 그들은 이렇게 가는거구나하는 걸 그때 알았을 것이다. 내심 굉장히 뿌듯했다.

 

얼마 안되는 금액으로 딱 그만큼의 활동에만 만족할 수도 있겠지만, 한 번의 경험으로 여기도 받을 수 있네? 이렇게 하면 되네?’ 하며 스스로 깨우쳐 좀 더 발전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학습의 결과이며 노력에 의해 갖게 되는 공정한 기회였다.

 

하지만 계획서나 정산하는 법에서 상당히 힘들어했다. 보지 않아도 될 면접과 힘들이지 않고 따 냈던 예산을 공모를 통해야한다는 번거로움 이상으로 반발이 심했던 부분이다.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공모사업을 계획하는 법, 정산하는 법을 다룬 책자를 만들기로 했다. 어쩌면 극성일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러나 해야 했다. 다른 사람들보다 다른 시각으로 보는 역할을 스스로에게 주문한 이상 생각을 달리해야 했고 과감한 실행이 필요했다.

 

시흥의 예술은 점점 나이가 들고 있다. 시흥의 일부 원로 예술인들도 인정하는 바다. 젊은 신인예술가들이 시흥으로 들어와야 시흥의 문화예술이 활기를 띨거라고 생각했다. 사실 공모사업 실행 이전에는 시흥의 젊은 예술가들 사이에서의 시흥은 높은 벽이었다. 그러나 공모를 통해 진입장벽이 깨졌다는 입소문이 나면서 젊은 친구들이 시흥으로 들어오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공모사업의 성과다. 늘 똑같은 루틴, 전화 청탁에 시달리지 않고 공정할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한 결과다. 이제 그들은 홍대로 가지 않고 시흥에서 자신들의 끼를 온전히 발휘할 수 있게 되었다. 공무원의 보람은 당신으로 인해 내가 되서 좋다라는 말을 들었을 때다. 1721호조벌 창작뮤지컬 제작 과정은 힘들었지만 시민들이 뿌듯해할 때 가슴이 벅찼던 것처럼 그런 감정은 다음 일의 원동력이 되었다.

 

책 축제 한번 해봐

퇴직을 바라보며 공로연수 중인 당시 김영진관장은 직원들에게 시야를 넓히라 끊임없이 주문했다. 도서관이라고 해서 안에만 있지 말고 밖으로 나가 활동해보라는 의미였다. 도서관이 책만 보는 공간이어서는 안된다, 사람을 만나고 연결하는 곳이어야 한다며 늘 입버릇처럼 말했다. 그리고 정숙이라고 쓰여있는 액자를 모두 떼었다. 도서관 본연의 역할론을 내세우는 이들과의 갈등도 있었지만 결국에는 그 생각이 옳았다. 도서관은 시민들과 친숙해졌다. 녹색장터와 책축제가 가장 큰 예다.

 

지역사회와 연계해서 뭘 해야 될지 고민하던 중 하게 된 것이 책 축제였다. 그렇다면 책 축제를 누구와 할 것이냐에 있어서 직원들이 아닌 지역의 관계기관들과 만남의 자리를 가졌다. 지역아동센터와 교육에 관련된 기관들. 관심 갖는 다수의 단체들과도 머리를 맞대었다. 마치 마을 자치처럼 진행했다. 2013년부터 시작한 책 축제는 코로나 이전까지 지속됐다. 크게만 보이던 공원의 공간들은 너무나 쉽게 채워졌고 책을 매개로 만난 그들은 서로의 네트워크가 되었다. 한 해의 축제를 본 기관에서는 다음의 기회를 요구하기에 이르렀다.

 

지역아동센터의 문도 활짝 열렸고 신천동이나 매화동의 경우 희망씨도서관에서 활동하는 자원봉사자들의 적극성으로 활발한 축제가 되었다. 책 축제를 위해 인형극을 준비하기도 하고 다양한 체험과 신선한 볼거리를 보여주었다. 펼치면 예쁜 책들을 바닥에 나뒹굴게 하고, 작가와의 만남도 큰 호응을 얻었다. 책 축제의 인기는 해를 거듭할수록 높아졌다. 참여형 책 축제의 성과였다. 이제는 책 축제를 위해 본인들이 먼저 생각하고 컨셉에 맞게 1년을 준비하여 참여한다. ‘시흥시는 도서관과 마을이 함께 책 축제를 만드는구나라는 인식이 강하게 심어졌다. 사실 책 축제를 하게 된 것은 어느 날 툭 던져진 한마디의 말 때문이었다. 당시 최계동부시장의 책축제 한번 해봐

 

 

정왕평생학습관, 두 번째 외도

문화예술과가 첫 번째 외도였다면 평생학습관은 두 번째 외도다. 시흥시에는 12개의 도서관이 있다. 작은 도서관은 마을마다 있다. 이제는 도서관이 시흥시에서 가장 많은 문화기관이 되었다. 그렇기에 평생학습과 도서관은 따로가 아니라는 것을 계속 주지시키고 있다.

 

임병택 시장이 민선 7 3주년을 맞이해서 K-골든코스트를 품은 교육 도시로 새로운 비전을 선포했다. 거기에는 공교육도 포함되어 있지만 직업교육, 평생교육도 담겨있다.

 

평생교육을 활성화시키기 위해서는 평생학습과만 열심히 한다고 되지 않는다. ‘아시아스쿨 같은 조직들이 따로 놀고 있다면 그것은 평생학습의 발전을 기대할 수 없다. 모두를 아울러야한다. 온 마을이 평생학습이 되어야 한다. 공교육에서 놓친 부분들을 잡아주는 역할을 하는 작은 기관들이 촘촘하게 연결되어야 비로소 평생학습으로의 완성이 되며 발전이 되는 것이다. 연결고리들은 연결되고 또 연결되어 시흥시 전체로 보면 거대하고 튼튼한 울타리가 된다. 아이들 입장에서 봤을 때는 어디서든 교육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 된다. 온 마을이 아이를 키우는 시스템이 잘 이루어지고 있다는 연결고리 현상이다.

 

온마을이 평생학습

2006년도에 평생학습도시, 시흥을 지정받았다. 계속되는 지정평가로 2021년도에도 평생학습 도시로 재지정이 되었다. 아직도 다수의 시민들이 입버릇처럼 칭하는 여성회관은 정왕평생학습관으로 바뀌었다. 2019년부터 2023년까지 평생교육 중장기 발전 계획에 의해서다. 2021 1월에 조직 개편으로 그 이름이 받아들여졌다. 그리고 전행주관장도 정왕평생학습관의 역사에 이름을 올렸다.

 

사람을 연결하는 일

정왕평생학습관에는 15개의 강의실에서 57개의 강좌가 움직이고 있었다. 평생학습관이 강의만 하는 곳으로 전락해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을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은 공간을 원했다. ‘그렇다면 평생학습관에서 공간을 제공하는 역할을 하겠다 라고 답했다. 새일본부가 있던 자리를 동아리 또는 지역 주민들의 커뮤니티 공간으로 주면 이용자들의 아쉬움을 달래줄 수 있을까.

 

모든 일은 사람을 만나는 것에서 시작된다고 믿고 있다. 사람들이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 들어보는 것만으로도 삶이 풍성해는 것 같다. 사람과의 만남은 책을 읽는 것과 같은 느낌을 준다. 지금은 평생학습관에 와서 일을 하고 있지만 언젠가는 다시 도서관으로 돌아갈지도 모른다. 도서관이 아닌 세상에 살아보면서 도서관이 어떻게 하면 좀 더 발전하고 성장할 수 있을까를 계속해서 생각한다. 평생학습관은 그런 생각을 하게 하는 매개다.

 

정말 많은 사람들을 만났어요. 기존의 답습만을 원하는 사람들은 나의 방식에 불만을 갖겠지만 발전적이고 도전적인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반겼을 거예요. 모든 것은 학습을 통해 이루어졌으면 하는 것이 나의 삶이 되었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