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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왕마을이야기/위기지원 자원조사

10년의 고통, 한시간만에 해결- 정왕본동 복지팀장의 다이얼

(좌) 한살 때의 여권 (우) 파키스탄에서 삼촌과 함께

 

파키스탄인 압잘씨가 본 기자에게 도움을 요청해 온 것은 지난 화요일. 서툰 한국어는 언어 전달에서 이해가 안되는 부분들이 더러 있었으나 꽤나 다급하고 애절했다. 만나서 자초지종을 들었다.

내용을 요약하자면,

올해 한국 나이로 14살이 되는 이군은 파키스탄 아버지와 한국인 엄마 사이에서 태어난지 1년 만에 파키스탄에 있는 친가로 보내졌다. 엄마 호적에 올라있는 한국 국적의 아이지만 한국말을 못 하는 한국인이다. 파키스탄에서는 불법체류자로 되어 있고 한국에서는 후에 알게 된 사실로 거주 등록 말소가 되어 있어 사실상 이모군은 양 나라에서 유령 아이가 되어 있었다.

10년 전, 정왕본동에서 사실혼 관계로 살던 부모 중 아버지는 사망했고 엄마는 거주 이전을 했다. 이모군이 제대로 된 학업과 거주의 자유를 받기 위해서는 여권 연장 발급이 시급했다. 그러나 엄마의 무관심과 방임은 아들을 10년 이상 불법체류자로 만들었다.

이런 상황에서 도움을 주고 싶었던 압잘씨는 관계기관들을 다니며 도움을 요청했으나 돌아오는 대답은 미온적이었다. 시간은 흐르고 아이의 교육은 하루라도 미루면 안되는 사안이기에 답답했던 압잘씨는 문득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 일었나보다. 최근 인연을 맺은 본 기자에게 연락을 해 온 것을 보면 말이다.

간절한 사연이야 충분한 공감을 불러일으키지만 섣불리 해결해주겠노라 확답을 하지 못한 것은 혹시 문제 해결이 잘 안되었을 경우 실망감을 넘어 절망감을 줄 수 있을까봐서다. 우선 침착하게 생각이란 걸 해야했다. 이럴땐 어떻게 어떤 방식으로 해결을 해야할까...?

(좌) 시흥시 정왕동

 

정왕마을교육자치회에서는 얼마전 위기지원자원조사분과를 만들어 위기아동 발생시 도움을 줄 수 있는 네트워크를 확보하는 조사를 했다. 아직 메뉴얼이나 조직이 완성 된 것은 아니지만 아카이브를 담당했던 필자는 문득 그것을 떠올렸다. '어쩌면 이것이 위기아동사례가 될 수도 있겠구나. 그렇다면 문제는 쉽게 해결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날 마침 SMD(시흥미디어) 사무국 회의가 있었다. 이 문제를 회의 안건으로 다루었다. 우선 복지팀을 찾아가 이야기를 나눠보고 해결이 되지않을 경우 언론을 이용해보자는 결론을 내렸다. 다음날, 압잘씨와 본 기자는 정왕본동 행정복지센터를 찾아가 조은정 복지행정팀장을 만나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문제의 해결 방법에 대해 머리를 맞대었다.

다행히 복지팀장이 적극적으로 나서주었다. 알아보니 아이의 엄마는 현재 경남 김해에 거주하고 있었다. 또한 기초생활수급자이며 행자 입원 중에 있다는 사실도 알아냈다. 과한 음주와 온전치 못한 정신력, 편집증까지 있던 아이의 엄마는 집 안을 온통 쓰레기더미로 만들어 집주인에게 여러번 쫓겨나기도 하는 등 잦은 민원발생으로 강제입원을 당한 것이다.

병원 측에 연락하여 주치의에게 상황 설명을 하고 아이 엄마에게도 서류 작성의 이해와 동의를 얻어냈다. 아이의 엄마는 '서류를 떼어주면 아이를 키우게 될까 봐 피한 것'이라고 했다고 한다. 이에 복지팀장은 여권 발급신청서와 법정대리인 동의서를 해당 병원으로 우편 발송하고 주치의 입회하에 아이엄마에게 싸인을 받아 이를 다시 압잘씨에게 전달, 서류는 파키스탄 한국 대사관으로 전하는걸로 일처리를 마무리했다. 압잘씨의 커다란 눈은 그렁그렁했다.

여권 재발급이 완료되면 아이는 당당하게 조부모와 함께 생활하고 또 외부활동도 자유롭게 할 수 있게 된다. 무엇보다 불법체류 신분으로 제대로 된 학교 공부를 할 수 없었던 지난 10년에서 해방되게 된다. 지난 10년간 수차례 아이엄마와의 통화에서 서류를 떼어 달라는 부탁과 아울러 경제적인 도움까지 주었던 압잘씨는 "오직 아이가 공부라도 제대로 할 수 있게 해주고 싶은 마음 하나뿐인데 너무 긴 시간 고통을 받았다"며 도움을 준 모두에게 감사해했다.

압잘씨는 최근 3주간 이 문제해결을 위해 파키스탄대사관, 파키스탄 한국 대사관, 경찰청 외사과, 행정기관등을 다니며 도움을 요청했으나 안됐다며 결혼이민자로 사는 서러움을 토로했다.

어쩌면 이 건은 행정이 적극적으로 개입하면 어떤 결과를 보일 수 있는지의 전형으로 기록될 듯 하다.

 

 

때로는 서류 한 장이 아이의 미래를 잡고, 때로는 서류 한 장이 아이의 미래를 열어주는 그 절대적 존재감은 인간이 만들어낸 규제의 부작용은 아닐까? 어쩌면 이것은 이 아이의 사례 뿐만이 아닌 복지혜택을 받아야 할 사람과 받지않아도 될 사람의 구분을 서류 한장으로 결정하는 현 실태와 다를  바 없을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