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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소설

제14화 여자라서(가칭)

장례를 치르고 정희의 걱정은 태산같았다. 당신말로 이제 아귀의 손에서 벗어나 말그대로 자유의 몸이 되어 혼자 살고 싶은 소망을 이루었는데 거취가 문제였다. 죽어서까지 남겨진 빚을 떠안게 된 정희와 정헌이었다. 와중에 혼자 남게 된 엄마 영임의 거취를 고민하지않을 수 없었기에 정희는 한숨만 폭폭 내쉴뿐이다. 장례를 치르고 남은 돈으로 밀린 방세와 월세보증금을 올려주고 당분간 지낼 식량과 생필품을 넣어주었다. 그리고 영임으로서는 자주 만져보지 못하는 돈뭉텅이를 쥐어주었다. 이제 혼자라 임대아파트 신청이 용이해졌다고했다. 혼자인데아 사회생활을 할 수 없는 고령에 오랜 지병이 있어 자격요건은 충분했다. 진행은 일사천리로 되어 신청한지 두달여만에 배정되었다. 비록 낡은 주택이었지만 서울 한복판에 살다가 같은 서울이지만 전혀 다른 방향으로 이사가 결정돼 허전함이 일었다. 하지만 이렇다저렇다 왈가왈부 할 수 있는 처지가 아니기에 영임은 정희가 하자는대로 할 수밖에 없었다. 정헌은 쏙 빠져있었다. 소심한데다 금전적으로 한푼의 보탬도 될 수 없으니 그럴만도 했다. 정희는 그래. 언제는 내가 안했냐.. 나만 힘들면 되지 뭐. 정희는 약간의 빚을 져 엄마 영임을 이사시켰다. 하나부터 열까지 모든 걸 세심하게 챙기려니 상당한 돈이 들어갔다.

 

임대아파트 보증금에 월 임대료. TV부터 진열장, 서랍장, 세탁기, 가스렌지, 에어컨, 침대, 하다못해 세면도구까지 모두 마련하여 8평 작은 공간에 채워넣었다. 8평이지만 작은방 포함 방이 두 개이고 화장실도 샤워가 가능했다. 주방에 서면 꽉 차는 정도의 공간밖에 되지않았지만 좋았다. 베란다에는 햇살이 강하게 들어왔다. 깨끗하게 도배가 되어있고 가구들도 모두 새거라 신혼집이 부럽지않았다. 처음 갖게 된 영임의 공간. 전에 살던 집에 비하면 구중궁궐이 부럽지 않았고, 비록 영구임대아파트이지만 월세 걱정없이 사는 내 집이나 마찬가지이니 그저 좋기만 했다. 전에 살던 주인집 아주머니에게 자랑하고 싶은 마음이 들 정도였다. 주인집 아주머니는 살던 집의 주방을 넓히고 리모델링을 했으니 다시 오면 안되겠느냐고 전화를 걸어왔단다. 영임이 이사를 가고 나서 주인집 아주머니는 마음이 허전해 며칠을 문밖에 나가지 않았다고 한다. 내려갈 때 들르고 올라갈 때 들르고 먹을것이 있으면 나눠먹고 하루에도 수차례 들르던 2층 친구의 집이었는데 이제 그 집이 비었으니, 다른 사람이 이사를 들어와도 영임에게 들었던 마음이 들것 같지 않아 더욱 외로움에 사무쳐 병이 날 지경이라고 했다. 사위는 같이 살기를 바래도 영임은 혼자 자유롭게 살기를 원했다. 집 얻어줄 형편도 살림에 보탤 돈도 정희나 정헌은 없었다. 아빠 동만이 가족에게 남긴 상처와 빚은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의 수준이었다. 그런 와중에 함께 살기를 바랐던 사위나 딸은 현실적 어려움을 모르는건지 아니면 어떻게든 해주길 바라는건지 그것도 아니면 어떻게든 되겠지 하는 마음이었는지 막무가내로 따로 살겠다고 고집을 부리는 엄마 영임이 야속했다. 어쩔때는 철이 있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이해도 됐다. 혼자 조용히 있기를 바라는 성격인데다 평생을 힘들게 살았으니. 정헌은 이럴때는 꼭 뒤로 빠져있었다. 정희 혼자몫으로 온전히 책임아닌 책임을 져야했다. 오지랖인 탓도 있을게다. 여름엔 덥고 겨울엔 몹시 추웠던 그런 집에서 벗어난 것만으로도 행복했다. 이사한 집에 단 에어컨은 더위를 몹시 타는 영임에게 시원함을 주었고, 추운 겨울에는 원없이 가동시키는 난방에 반팔을 입을 정도로 따스했다. “따뜻해?” “더워입가에 번지는 미소가 그저 행복했다. 주방에서 서서 음식을 만드는 것도 베란다에 이것저것 놓을 수 있는 것도, 안방에 햇빛이 많이 들어와 더우면 작은 방 침대에 누워 TV를 보는 것도, 비록 작은 8평짜리 공간이지만 영임에게는 하루가 지루하지 않은 궁궐같은 집이었다. 먹을거나 생필품들도 정희의 몫이었다. 사는게 힘들어 외면하고 싶다가도 노인네 혼자 전전긍긍하며 살고 있을거란 생각을 하면 외면할 수도 없었다. 나혼자 힘들면 그만이지. 정헌은 오며가며 들르는 일이 잦아졌다. 혼자 있다보니 차려 먹는 것이 귀찮아진 영임은 너무 자주 오는 아들의 방문이 좋지만은 않았다. 오면 늘 술을 찾았다. 술을 마시면 폭력성이 나타나기도 해서다. 아빠에게 평생을 시달려왔던 엄마이고, 아빠의 폭력을 수십년간 봐 온터라 질색을 하던 정헌이었다. 그런데 그런 아빠의 폭력성은 정헌이 그대로 엄마 영임에게 하고 있었다. 술에 취하면 비틀거리며 하는 행동도 그대로 닮아있었다.

 

하지만 아내에게는 그러지않았다. 엄마 영임에게만 그랬다. “아빠한테 평생을 시달렸는데 이제 겨우 벗어나 맘 편히 살게 됐는데 이제 니 오빠가 그런다.” “지 마누라한테는 안그런데?” “걔한테는 안그러나보더라.” “.....” “아들이 그러니 아빠때보다 더 미치겠다. 안왔으면 좋겠는데 온다고 하는걸 못오게 할 수도 없고...” 남펀에 이어 아들에게까지 폭력에 시달려야 하는 영임. “그렇게 끼고 돌던 아들은 엄마한테 그렇게 못되게 굴고 주워다 키운 딸처럼 대하던 내가 효도하네?” 비꼬는 말이었다. 그럴때마다 영임은 아무말없이 입을 다물었다. 술을 마시고 폭력성을 드러내도 영임에게는 늘 아픈 손가락 아들, 정헌이었다. 그런 엄마 영임이 야속해 한바탕 퍼붓고 나면 정희의 마음이 두고두고 불편했다. 그저 아들아들! 아들만 힘들고 딸은 안힘든가? 같은 처지인데 누군 나설 때 안나서고 누군 돈만 쓰고! 친정이란 무게가 버거워 다 외면하고 모른척 살고 싶었다. 하지만 보름을 넘기지못했다. 보름이 지나면 전화가 온다. 너 무슨 일 있는건 아니지? 연락이 없어서... 그때 전화 그렇게 끊고 한참을 통곡하면서 울었어. 내가 전생에 뭔 죄가 있어서 너희들을 힘들게 하는지... 얼른 죽어야하는데 얼른 죽지도 않아. 염병할 영감탱이 죽어서까지 힘들게하고.. 살아있을 때 그렇게 돈을 많이 벌었으면 그 돈 다 나한테 줘서 생활을 하게 해야지! 그럼 지금쯤 강남에서 번듯하게 살고 있을거고 니들 고생 안시키고 학교도 대학까지 다 보내줬을텐데!

 

정희는 평소에 잘 하지않던 엄마 영임의 넋두리를 들으면서 그 넋두리가 가슴에 와 닿지않았다. 아빠 동만의 잘못된 씀씀이가 잘못됐다고 하더라도 그 넋두리는 아무 소용이 없는거였고 엄마 영임의 삶이 어떠했을지 알고도 남음이 있으나 어쨌든 살아내기는 했지 않은가! 그렇다면 아빠 동만만의 잘못이 전부였을까? 정희는 가끔 생각했다. 남편이 난폭한 가장이면 여자가, 아니 엄마가, 엄마로서 자식들 위해 가정을 위해 생활력을 끄집어내야 하는 거 아닌가. 그것을 엄마 영임은 몰래 일을 하려고 해도 어떻게든 찾아내서 일을 못하게 머리끄댕이에 잡고 나와 일하던 곳마저도 다시는 발을 못붙이게 난장판을 치고 나와서라고 했다. 그런 생각을 하게 된 것은 정희도 엄마가 되고나서 아이를 낳아 키우고 아이를 키우면서 금전적인 위기에 처할 때마다 든 생각이었다. 곱게 자란 엄마 영임이었다. 결혼이란 것을 한 순간부터 겪지 않았던 일을 겪으며 기구한 삶을 살게 되니 그건 같은 여자로서 생각해보면 깊이 새겨지는 연민과 동정이 되었다. 좋았던 기억보다 나쁜 기억만이 가득했던 남편 동만과의 삶, 좋았던 기억보다 나쁜 기억만이 가득했던 아빠 동만과의 삶. 그는 꿈에서까지 처참하고 폭력적인 모양새로 나와 식은땀을 흘리게 했다.

 

정희는 벽제 화장터에서 관 째 들어가는 아빠의 마지막 모습을 보고 있었다. 사방이 검은 옷을 입은 유족이란 사람들로 가득했다. 영임은 남편의 마지막 숨 넘어가는 모습도, 관이 화장되어 들어가는 모습도 보고 싶어하지 않았다. 정희의 눈에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그건 아빠에 대한 그리움이나 죽음에 안타까움이 남아있어서가 아니었다. 그냥 죽음 앞에 눈물이었고 나쁜 기억만 잔뜩 문 애증의 눈물이었다. 병원에 있을 때 깨어나 집에 돌아가기를 두려워했던 영임, 정희, 정헌은 그의 죽음을 바라는 반절의 소망에 후련할 줄 알았다. 그러나 꿈에서까지 그들은 두려움에 떨어야했다. 이제 그만 여기 잊고 하늘로 가지, 죽어서까지 괴롭히냐- 유독 정희의 꿈에 자주 나타났고 기일이 다가오면 영임의 꿈에도 나타났다. 그럴 때 벽제 화장터를 찾으면 한동안 꿈에 나타나지 않았다.

 

정희는 가벼운 배낭 하나를 메고 잔바람 부는 숲속의 외길을 걷고있었다. 높이 솟은 무성한 나무 잎들 사이를 비집고 내려오는 햇살에 눈부셔하며 찬찬히 걸었다. 폭력적인 가정환경에서 벗어나 도망치듯 결혼이라는 것을 해버린 정희였다. 결혼하면 결혼 전 끔찍했던 생활들을 더 이상 하지 않아도 될거라 믿었다. 그런데 하루하루 살아낸다는 표현이 딱 맞을 정도로 정희는 하루하루 살아내고 있었다. 때론 죽고 싶을때도 있었고 때론 사랑하는 가족들 힘들지않게 숨어 모든 것이 해결 될 때까지 일을 할까도 생각했다. 왜 끝이 나지 않을까. 그 이유는 명확했다. 모질지 못한 마음에 씀씀이가 헤퍼서다. 아빠 동만이 죽으며 남긴 빚을 오빠 정헌과 나누어 정헌의 배우자나 정희의 배우자나 모두에게도 고통을 주었다. 빚은, 빚은 이후 30년간 계속 이어졌다. 그래도 끝이 나지 않았다. 죽어서나 끝이 나려나. 나의 이 고통을 내 아이들에게만은 주고싶지 않은데. 주지 않을 것이다. 라고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친정엄마에 이어 딸에게 물려진 빚, 친정엄마가 된 정희는 그 딸에게 절대 물려주지 않으리라 다짐을 했다. 아무리 열심히 일을 해도 줄어들지 않는 빚은 돌고 돌려, 늘고 또 늘었다. 도저히 감당이 되지않았을 때 남편 태윤이 갚아주었다. 그저 개미처럼 일만 할 줄 알고 요령을 부릴 줄 모르며 성실함만 몸에 벤 태윤으로서는 이해가 되지 않는 빚. 정희는 본인도 감당하지 못하는 빚잔치를 오빠 정헌의 울먹거리며 매달리다시피하여 약한 마음에 연대보증을 서 준 것이 자기 발등을 찍은 것이고 후회에 후회를 거듭하는 거라 되내이고 또 되내이고 있던 터였다. 그렇다고 죽음을 택하기엔 아이들의 슬퍼하는 정도의 수준이 어떨것이라 걸 알기에 그럴수도 없었다. 정희는 벼랑 끝에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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