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가장 큰 행사 김장나눔
“갯골김장축제는 내가 만들고 내가 깼어요.” 처음 듣는 말이다. 내막이 있는 듯 싶어 상세히 물어보았다. “내가 주민자치위원을 했을 때였어요. 어디를 보니 김장을 한꺼번에 하고 있더라고요. 그런데 뭘하든 공유를 하지 않는거예요. 공유를 해야 수혜자가 겹치지 않거든요. 특히 김장처럼 연중 가장 큰 행사인 것은 반드시 공유가 되어야해요.”
바로 동사무소에 가서 수혜자들을 취합하여 겹치지않게 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공유가 되지 않으면 어떤 집은 김장김치를 10통씩 받아 놓는 집도 있고 또 어떤 집은 아예 받지도 못하는 집이 발생해서다.
“어르신들은 김치를 받았다고 하면 되는데 다음에 안줄까봐 불안한 마음에 또 받아놓거든요. 무조건 나누어준다고해서 좋은 것이 아니라는 한 예인거죠.”
혼자 사는 노인들은 김치냉장고가 거의 없다. 조그만 냉장고 하나 정도다. 그러면 베란다에 쌓아놓는다. 다 먹지 못해 시어 꼬부라진다.
이런현상들이 반복되니 이대로는 안되겠다싶어 대책을 마련해보기로 했다. 큰 단체 회장들을 한 명씩 불러 설득했다. 아니 호소라고 해야 옳으려나... 회장단이 먼저 변해야한다고 말했다. 통합을 제안했다. 아는 사람만 주는게 아니라 통합되면 받은 사람은 또 안 받고 못 받은 사람은 받게 될 것이라고 설득했다.
그리고 함께 하자고 했다. 하다보니 일이 커졌고 결국 그 해 김장은 갯골생태공원 잔디광장에서 치러졌다. 굉장했다. 그런데 2회째는 보여지는 행사가 되어버렸다. 기업화가 된 것이다. 3회째부터는 참여도 저조했다. 그 이유는 여러군데서 터져나왔다. 우선 공장에서 절임배추와 양념을 산다. 그러나 막상 김장행사 때는 품평회 때의 맛이랑 달랐다. “우리는 고춧가루를 만져보면 딱 알아요. 국산인지 아닌지. 다툼도 벌어지고...” 봉사의 참 의미와 정서는 이미 망가져 있는데 뭘 보여주려고 하느냐며 보여주기식은 안된다고 강력히 주장했더랬다. 결국은 누군가의 편리함과 이익에 김장행사의 본질은 사라지고 결국 4회로 갯골김장축제는 끝나버렸다.
“처음에 갯골에서 하는걸 원하지 않았아요. 생태공원이잖아요.” 누구를 위한, 무엇을 위한 김장행사인지 모른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였다.
원했던건 김장품앗이
동주민센터에서 김장을 할 때는 적어도 인간미가 있었다. 김장을 하면 길을 지나던 주민들이 아는체를 해온다. 팔을 걷어부치고 “내가 속 좀 넣어줄까요?”하며 거든다. 그런 취지였다. 이웃나눔을 이웃과 함께 하는 것, 갯골김장축제는 그 본연의 취지를 깨뜨려버렸던 것이다. 동에서 하면 각박한 세상을 살 맛 나는 세상으로 만드는 분위가 형성되어 더 중요할 것 같았다.
다시 동으로 가니 처음 취지와 같게 되었다. 다른 동도 그렇겠지만 신천동과 은행동, 대야동은 복지사들이 굉장히 잘한다. 수혜자들이 겹치지않게 꼼꼼히 체크를 한다. 김장배추는 직접 절이기도 하고 사오기도 한다. 양념은 국산을 사용하고 배추나 양념재료들은 밭에서 뽑아와 직접 손질하고 다듬어놓는다. 국산양념에 밭에 나는 것들을 사용하니 김치가 무르지않고 맛있다. 소싯적 김장 꽤나 담갔다던 어르신들이 지나다 동참하니 더욱 풍부하고 재미진 김장축제가 되었다. 소통이란 이렇게 자연스럽게 다가왔다.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아무나 할 수 없는 봉사
그러나 봉사란 것이 하고싶다고해서 무조건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단순히 동정심 하나로 뛰어들었다가는 낭패를 보기 쉽다는 얘기다. 자칫 서로간에 상처를 줄 수도 있기에 신중함이 요구된다.
봉사는 중독
청소년상담봉사, 찾아가는 어르신 목욕봉사, 장애인대상 봉사등 많은 봉사를 했지만, 시흥 신천으로 오면서 애정이 더 생기는 것은 어쩌면 봉사현장의 볼모지라서가 아닐까싶다. 당시에는 자원봉사센터가 없던 때였다. 시흥에서 봉사를 시작하고 3개월 후에 생긴 것이 지금의 시흥시자원봉사센터(센터장 김운영)다.
"처음 시흥자원봉사센터는 4개였어요. 내가 16개를 만들고 나왔지요. 당시 봉사인원만 천명이 넘었는데 지금은 몇개가 줄고 다시 몇 개가 생겨 20개였던 센터가 배곧이 생기면서 다시 18개가 되었어요."
봉사도 중독이다. 하루라도 봉사를 하지 않으면 시쳇말로 몸에 가시가 돋힐 정도다. 봉사를 많이 하는 사람들이라면 공감하는 부분일 것이다. 30년을 했으니 그럴만도 하다. 그만큼 몸에 베어있으니 힘이 들어도, 사고로 다리를 다쳐도 견딜 수 있는 것 같다. 하루라도 몸을 쉴 때면 오히려 몸이 더 아플 정도라고 하니 중독이 맞다. 어쩌다 쉴 때면 머릿속에 온통 돌보던 대상자들 생각뿐이다. 그리고 마음이 조급해진다.
“난 봉사현장에 있을 때 더 힘이 나”
보기에도 그래보인다.
원래도 잠이 적지만, 하루에 잠을 두시간 반 정도만 자고 하는 봉사활동은 스스로 생각해도 신기할 정도다. 대개 봉사에만 주력하면 집안일에 소홀히 한다고 생각하는데 전혀 그렇지않다. 오히려 에너지의 연속성으로 집에 가면 청소며 빨래며 음식이며 게을리하지않는다. 습관이다.
또 하나 게을러지지않는 습관이 있다. 일기를 쓰는 일이다. 이상기대표에게 일기는 하루의 고백이다. 하루를 고백하는 일기는 이상기 자신을 다 잡는 중심이기도 하다. 새벽 두세시 정도에 눈을 감는 하루일과는 매일의 반복이어도 매일이 새롭다.
미친 봉사
어떤 것이든 무언가를 할 때 반은 미쳐야 비로소 일이 완성된다고 했던가. 미쳤다는 소리를 여러번 들었다. “어쩔 때는 돈 받고 하는 일이 아닌데 내가 왜 이렇게까지 하나.. 할 때도 있어요. 그런데 나는 이 미친 짓이 참 좋아요. 즐거워요.” 동참해주는 봉사자들도 자극을 받았는지 아니면 감동해서인지 덩달아 미쳐간다.
이제는 사명이 된 봉사
30년을 봉사현장에 있으니 다양한 사람, 만가지 사연을 접하게 된다. 몸을 사리지않는 봉사활동이 생명과 직결될 때 당시는 절박함이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무모하기 짝이 없는 상황이었음을 느낄때가 있다. 지난 2017년 갑작스런 집중호우로 신천동 저지대 일대가 침수된 적이 있었다.
신천동자원봉사센터장을 했을 때다. 새벽에 급작스럽게 전화 한 통을 받았다. (나는 지역의 어르신들을 모두 ‘엄마’라 불렀다. 그리고 지역의 청년들에게 ‘엄마’라고 불리운다.) 어린 손주를 데리고 사는 반지하 어르신 집에 물이 차 살려달라는 전화였다.
“아이고 딸아! 아이고 딸아! 물이 들어왔다! 나 좀... 우리 좀 살려주라!” ‘엄마’를 진정시키면서 맨발에 슬리퍼만 급하게 신고 현장으로 달려갔다. 엄마집에 가보니 똥물이 역류했다. 문도 열리지 않았다. 너무 긴박한 상황이라 앞뒤 볼 것도 없이 무작정 집으로 돌진해 들어갔다. 안에 있는 어린 손주를 먼저 구해야한다는 생각밖에 없었다. 무릎까지 차오른 똥물 아래는 아무것도 보이지않았다. 무작정 헤쳐나가니 발에 못이 박히고, 똥물 때문에 구역질이 났다. 그러나 오직 문을 열어야겠다는 생각밖에는 없었다. 사람부터 살리고 봐야했으니까.
아비규환이 따로 없는 수해 현장이었다. 여기저기서 전화가 빗발쳤다. 현장을 지휘하고 도움을 요청하는 이들을 봐주며 그들에게 필요한 것들을 대처해주느라 정신이 없었다. 시흥시자원봉사센터(당시 센터장 최윤정)에 연결하여 시흥시 각동 자원봉사센터 회원들을 모으고 적십자회원들을 집결시켰다. 시청과 주민센터도 일사분란하게 움직였다. 각 기관 및 단체들과 수재민들을 위한 밥차도 합류했다. 재난에 대처하는 민.관의 협력은 놀라울 정도였다. 어떻게 지나갔는지도 몰랐던 며칠... 어느 정도 재난 상황이 안정이 된 후 병원에 가니 파상풍이라는 진단이 내려졌다.
몸 아픈 것은 얼마든지 견딜 수 있으나 마음 불편한 것은 견딜 수 없으므로 파상풍의 우려에도 현장을 빠져나올 수 없었던 결과였다. 입원을 하면서 많은 지역인사들이 병문안을 했다. 이상기대표의 봉사인생이 헛되지않았음에 또다른 보람을 느끼던 입원기간이었다.
자신의 마음과 대상의 편의를 위한 봉사는 책임이어야 한다. 그리고 지속적이어야 한다.
한결같은 마음으로 대상을 돌봐주어야함은 물론, 관계기관과의 협력과 봉사자들간의 유대도 중요하다. 그것은 사명이 되었고 봉사는 무엇보다 청렴해야한다고 강조한다.
‘그것은 신념이다.’ 이상기대표의 말이다.
4
4부에서 계속
[이상기의 글로 보는 다큐]는 이 블로그에서 5부작으로 이어집니다. 최근 LG의인상과 방송에도 초대되어 시흥의 '인물'이 되었지요. 이상기대표의 삶 속으로 들어가봅니다. 이 원고는 2020년 시흥시자원봉사센터의 의뢰로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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